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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이해

8년 만에 찾아온 불면의 밤, 통제라는 이름의 감옥을 열며

by 황금정원 2026. 5. 15.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는 5월의 오후, 문득 고백 하나를 던지며 글을 시작하고 싶어졌습니다. 사실 요즘 제 블로그가 독자 마음에 닿지를 못하는 것 같아 반성을 하던 참이었거든요. 

이론만 나열하는 글보다는, 제 안의 소용돌이를 심리학이라는 렌즈로 들여다보면 좀 살아있는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저와 독자 모두에게 더 의미 있는 시도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일상에서 조금은 이해가 가지 않는 제 마음속 움직임에 대해 이야기하고 풀어보겠습니다. 

어제, 저는 정말 오랜만에 고통스러운 밤을 보냈습니다. 무려 8년 만입니다. 지난 8년 동안 저는 꽤 단단해졌다고 믿어왔고, 덕분에 '꿀잠'을 자는 평온한 일상을 누려왔습니다. 하지만 어제는 30분마다 눈이 떠지는 기괴한 밤이었습니다. 

'우울'인 줄도 모르고 달렸던 8년 전의 나

불안과 반복되는 생각 속에서 밤늦게 침대에 앉아 깊은 생각에 잠긴 사람의 감성 일러스트

잠을 설치며 문득 오래 전의 저를 떠올렸습니다. 당시의 저는 부정적 자아상인지삼제의 늪에 빠져 삶의 희망을 찾지 못한 채 2~3년 동안 깊은 우울감을 안고 살았죠.

치명적인 점은, 그때의 제가 그것이 '우울'이라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저 기계적으로 해야 할 일을 해낼 뿐이었죠. 다행히 삶의 궤적을 바꿀 소중한 계기들을 만나 사고방식이 변했고, 그 후 8년은 제 인생에서 가장 안온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그 견고하던 평온에 균열이 생겼습니다.

몸이 보내는 신호: 짜증과 감각의 괴로움

단순히 내일 있을 일정이 걱정되어 설치는 잠과는 결이 달랐습니다. "낮에 커피를 한 잔 더 마셔서 그런 걸까?"라고 애써 이유를 찾아보려 했지만, 사실 알고 있었습니다. 며칠 전부터 제 삶의 방향에 대한 고민과 걱정이 '불안'이라는 손님으로 찾아와 있었다는 것을요.

어제 자다 깨기를 반복하는 와중에 몸 안에서 치밀어 오르는 '짜증'의 감각은 저를 끈질기게 괴롭혔습니다. 그 느낌이 너무나 생경하고 싫어서, 잠결에 "내일은 저녁을 조금만 먹겠다"며 스스로와 어설픈 약속을 할 정도였죠.

돌이켜보니 그 감각은 약간의 포만감, 혹은 살이 찌는 듯한 느낌에 가까웠습니다. "이것 하나 관리 못 하냐"는 자책, 아마도 나에 대한 통제감을 잃어버린 듯한 상실감이 신체적인 불쾌감으로 나타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잠결임에도 불구하고 "이건 내가 조절할 수 있어!"라고 선언하듯 의식적으로 적게 먹겠다는 약속을 내뱉었던 것 같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저에게는 꿈과 현실의 경계가 희미해진 느낌이었습니다. 꿈속에서도 저는 끊임없이 의식적으로 무언가를 다루고 통제하려고 애쓰고 있더군요.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나를 건드리는 생각들, 그리고 그 생각과 결합된 불쾌한 신체 감각들은 밤새 저를 뒤흔들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신체화 현상'이나 '정서적 각성'으로 설명하곤 하지만, 어제의 그것은 이론이 아닌 생생한 통증이자 괴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다시 시작하는 마음 탐구

심리학을 공부하며 저의 가장 큰 목표는 '무의식의 의식화'를 통해 내 성격 구조를 건강하게 변화시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불면의 밤을 기록하며 뼈아픈 진실을 마주했습니다. 저는 무의식을 의식화하고 있었던 게 아니라, 무의식이 조금이라도 삐져나오지 못하도록 온 힘을 다해 입구를 틀어막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잠결에 내뱉은 '소식(小食)의 약속'은 사실 삶의 방향을 잃어버린 듯한 감각 속에서 제가 쥘 수 있는 마지막 통제권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인생의 큰 줄기는 내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당장 먹는 음식이라도 통제하며 "나는 여전히 건재해"라고 증명하고 싶었던 걸까요? 꿈속에서조차 쉬지 못하고 무언가를 다루려 애썼던 제 의식에게, 이제는 미안한 마음마저 듭니다.

어쩌면 저는 오랫동안 '괜찮아지는 것'만을 목표로 달려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불안을 없애고, 부정적인 생각을 교정하며,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관리해 왔습니다. 물론 그 덕분에 예전보다 건강해졌고 삶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지만, 동시에 '괜찮은 나'를 유지하기 위해 너무 오래 긴장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간과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심리학을 배우면서부터는 "이 정도는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전문가라면 내 마음 정도는 완벽히 이해해야 한다"는 또 다른 기준이 저를 옭아맸습니다. 자유로워지고 싶어 시작한 공부가 어느 순간 스스로를 더 감시하고 통제하는 도구가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이번 불면의 밤은 참 아이러니합니다. 애써 눌러두었던 불안이 '몸의 감각'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형태로 결국 저를 찾아왔으니까요.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어쩌면 이것은 다시 무너졌다는 신호가 아니라, 이제는 더 이상 억지로 버티는 방식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는 마음의 신호인지도 모르겠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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