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느 순간, 자신의 문제를 이미 알고 있다고 느끼게 됩니다.
“나는 왜 이렇게 나를 비난할까”
“왜 나는 항상 나를 낮게 평가할까”
이 질문에 대해, 어느 정도의 답을 가지고 있게 되는 시점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경험일 수도 있고, 반복된 관계 속에서 형성된 패턴일 수도 있습니다. 어제 글에서 우리는 이러한 부정적 자아상이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한 가지 질문이 남습니다. “이해는 되었는데, 왜 바뀌지 않을까?”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아, 그래서 내가 이렇게 반응하는 거구나”, “이건 과거의 영향이구나”라고 말이죠. 그런데 막상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면, 우리는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자신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순간, 다시 자신을 비난하게 됩니다. “나는 왜 아직도 이럴까”
이 지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다시 한번 오해에 빠집니다. 자신이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거나, 의지가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1. 심리학으로 본 인식의 구조: Eric Berne의 삶의 태도
심리학에서는 사람이 자신과 타인을 바라보는 방식이 일정한 구조를 가진다고 설명합니다. 교류분석을 제안한 에릭 번(Eric Berne)은 이를 ‘삶의 태도’라는 개념으로 정리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사람은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위치 중 하나에서 자신과 타인을 인식하게 됩니다.
- ✔️ 나는 괜찮고, 타인도 괜찮다. (I'm OK, You're OK)
- ✔️ 나는 괜찮지 않고, 타인은 괜찮다. (I'm not OK, You're OK)
- ✔️ 나는 괜찮고, 타인은 괜찮지 않다. (I'm OK, You're not OK)
- ✔️ 나는 괜찮지 않고, 타인도 괜찮지 않다. (I'm not OK, You're not OK)
이 중에서 부정적 자아상이 강한 경우는 주로 “나는 괜찮지 않다”는 위치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러한 인식은 단순한 생각이라기보다 초기 관계 경험 속에서 형성된 기본적인 자기 신념에 가깝습니다. 특히 “나는 괜찮지 않고, 타인은 괜찮다”는 인식 구조는 타인과의 비교 속에서 자신을 낮게 평가하게 만들고, 작은 실패나 관계의 변화에도 쉽게 자기 비난으로 이어지게 합니다.
2. 정서 도식: 생각이 아닌 '경험'의 문제
이렇게 보면 문제는 비교적 단순해 보입니다. “나는 괜찮지 않다”는 생각을 바꾸면 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단순한 생각이 아니라, 더 깊은 수준에서 작동하는 정서적 구조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정서중심치료를 제안한 레슬리 그린버그(Leslie Greenberg)는 인간의 감정 경험이 과거의 경험이 축적되어 형성된 ‘정서 도식(Emotion Scheme)’에 의해 조직된다고 보았습니다.
특정한 정서적 반응이 반복될 때, 그와 관련된 정보를 처리하는 기본적인 방식입니다. 이는 정서적 기억, 신념, 이미지, 감각, 생리, 행동경향성을 포함합니다. 사람들마다 삶에서 중요한 사람들과 맺는 관계에서 서로 다른 고유한 정서 도식을 형성하게 됩니다. 즉, 정서 도식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기억, 신념, 신체 반응, 행동이 함께 묶여 자동으로 작동하는 '감정의 패턴'입니다.
예를 들어,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불안감을 경험하면,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두려움을 갖게 되는 도식이 형성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누군가의 말투가 조금만 차갑게 느껴져도 갑자기 위축되고 긴장되며, 단순한 기분의 변화가 아니라 몸이 먼저 굳고 “내가 잘못했나?”라는 생각이 자동으로 떠오르며, 이후 행동까지 영향을 받게 됩니다.
이처럼 현재의 반응은 단순히 지금 상황 때문이 아니라 과거의 경험과 그에 대한 신념, 신체 반응, 행동 경향이 하나로 묶여 반복적으로 작동하는 정서 도식의 한 예로 볼 수 있습니다.

특정한 상황에서 이 구조가 활성화되면, 우리는 단순히 감정을 느끼는 것을 넘어서 이미 익숙한 방식으로 자신을 해석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그 감정을 자신의 정체성과 동일시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도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 “역시 나는 부족한 사람이다”라는 결론으로 빠르게 이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긍정적인 사고를 반복하는 것만으로는 이러한 구조를 변화시키기 어렵습니다.
중요한 점은 이 과정이 매우 자동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생각을 선택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보다, 이미 그렇게 느껴지고 그렇게 믿어지는 상태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생각’이 아니라 ‘사실’처럼 경험하게 되고, 이 지점에서 변화가 어려워집니다.
3. 변화를 위한 새로운 질문
우리는 종종 긍정적인 생각을 반복하거나 스스로를 설득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정서 도식이 그대로 유지된 상태에서는 새로운 생각이 깊이 자리 잡기 어렵습니다. 겉으로는 “나는 괜찮다”라고 말하면서도, 내면에서는 여전히 “나는 괜찮지 않다”는 감정이 유지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부정적 자아상이 쉽게 바뀌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그것을 단순한 사고의 문제로 접근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더 깊은 수준에서 작동하는 정서적 경험의 문제일 가능성이 큽니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생각을 억지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 정서적 경험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사실 저 역시 오랫동안 '나는 괜찮지 않다'는 감각이 슬라임처럼 내 깊은 곳에 달라붙어 있는 느낌에 갇혀 있었습니다. 머리로는 알지만,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그 괴로운 시간을 7년 넘게 통과해왔지요.
그렇다면 이 오래된 자아상과의 관계를, 우리는 실제로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다음 글 [실전편]에서 저의 개인적인 경험과 구체적인 방법을 통해 다루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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