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물거래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처음 2주 정도는 생각보다 거래가 잘됐다. 초심자의 운이었는지 수익도 꽤 났고, 처음으로 주식이나 투자라는 것이 재미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차트를 보면서 거래하는 것이 아니라 자꾸 돈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오늘 이만큼 벌면 얼마가 되고…’
‘이렇게 계속 벌면 한 달이면 얼마고…’
‘조금만 더 먹으면….’
아직 벌지도 않은 돈을 머릿속에서는 이미 벌고 있었다.
그렇게 돈으로 희망회로를 돌리기 시작하면서 이상하게도 거래는 점점 꼬였다.
손절이 많아지고, 뇌동매매를 하고, 들어가야 할 자리에서는 두려워서 못 들어가고, 정작 나와야 할 자리에서는 나오지 못했다.
사야 할 때는 두렵고, 팔아야 할 때는 버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것은 선물거래를 시작하면서 갑자기 생긴 문제가 아니었다.
주식을 할 때도 나는 비슷했다.
팔아야 할 때는 미련 때문에 못 판다.
그리고 지나간 차트를 바라보면서 후회한다.
‘나는 알고 있었는데.’
‘왜 그때 못했을까.’
처음에는 내가 아직 초보라서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같은 행동을 반복해서 경험하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오래전부터 반복해 온 나의 패턴일 수도 있겠구나.
시장은 이미 말하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도 그랬다.
원래는 단타로 잠깐 들어간 포지션이었다. 처음에는 수익도 줬다.
계획대로라면 수익을 챙기고 나오면 되는 거래였다.
그런데 나는 나오지 않았다.
시장에서는 점점 내가 생각했던 방향과 반대되는 신호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나는 그 신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시 올라오겠지.’
‘어차피 올라갈 건데 한번 털어내는 거겠지.’
그 전에 비슷한 자리에서 진입하지 못했다가 가격이 크게 올라가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그때의 아쉬움이 내 안에 남아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번에는 놓치고 싶지 않았다.
미장이 시작되고 가격을 몇 번 올려주더니, 어느 순간 5분도 되지 않아 아래로 강하게 내리꽂았다.
그런데 나는 그것마저 이렇게 해석했다.
다시 조금 올라오자 오히려 내 생각이 맞다는 확신이 생겼다.
하지만 아니었다.
방향은 아래였다.
나는 차트를 보고 있지 않았다
가격이 본격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하자 그때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손절도 못 하고, 반대 포지션으로 대응하지도 못하고, 그냥 차트가 내려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멈춰라.’
‘제발 이제 그만 내려가라.’
시장을 분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게 속으로 부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원하는 시장을 보고 있었다.
시장은 이미 여러 번 내 생각과 다른 정보를 보여주고 있었는데, 나는 그 정보를 받아들이는 대신 내 생각을 유지할 수 있는 이야기로 바꾸고 있었다.
하락하면 ‘털어내는 것’이 되고, 반등하면 ‘역시 내 생각이 맞았던 것’이 되었다.
어떤 움직임이 나와도 결국 내가 믿고 싶은 결론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왜 나는 내 것을 챙기지 못할까
그날 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돈을 잃었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었다.
예전에도 몇 번이나 했던 행동을 또 반복했다는 사실이 견디기 힘들었다.
스스로에게 화가 났고, 설명하기 어려운 자기혐오와 비슷한 감정도 올라왔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문득 한 문장이 떠올랐다.
수익이 내 앞에 왔을 때 챙겨 나오면 되는데 그러지 않는다.
좋은 진입 자리가 왔을 때는 두려워서 보내버린다.
그런데 이미 상황이 나빠진 것은 이상하리만큼 놓지 못한다.
생각해보니 이것은 돈에서만 나타나는 모습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원하는 것은 속으로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겉으로는 별것 아닌 것처럼 행동할 때가 있다.
원하면서 밀어내고, 놓칠까 봐 집착하면서도 괜찮은 척한다.
왜 그런지는 아직 정확하게 모르겠다.
다만 이번 거래를 통해 한 가지는 분명하게 보였다.
나는 시장과 싸우고 있었다
가격이 내 생각과 다르게 움직이면 나는 단순하게
‘아, 이번 판단은 틀렸구나.’
하고 받아들이지 못했다.
오히려 마음속에서는 이런 말이 올라왔다.
‘아니야.’
‘내가 맞아.’
‘조금 있으면 다시 돌아올 거야.’
‘그러면 내가 맞았다는 게 증명될 거야.’
그래서 손절이 어려웠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손절은 단순히 돈을 잃는 행동이어야 하는데, 어느 순간 내 마음에서는 ‘내가 틀렸다고 인정하는 행동’이 되어 있었다.
그러니 버티게 된다.
가격이 다시 돌아오기만 하면 손실도 사라지지만, 동시에 이런 말을 할 수 있으니까.
손절보다 더 무서웠던 것은 억울함이었다
특히 손절한 뒤 가격이 다시 내가 처음 예상했던 방향으로 움직이면 유난히 약이 올랐다.
단순히 돈을 잃어서가 아니었다.
‘내 판단은 맞았는데 내가 나를 못 믿어서 또 놓쳤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다음 거래에서는 더 버티게 된다.
돌이켜보니 나는 이 고리를 반복하고 있었다.
시장은 나에게 아무것도 증명해줄 의무가 없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참 당연한 이야기다.
시장은 나에게 아무것도 빚지지 않았다.
내가 두 번 손절했다고 세 번째에는 수익을 줄 이유도 없고, 지난번에 좋은 기회를 놓쳤다고 이번에 그 기회를 돌려줄 이유도 없다.
내가 상승이라고 생각했다고 시장이 상승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나 역시 시장에게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할 필요가 없다.
하나의 가설을 세우고
시장이 아니라고 하면 그 가설을 버리는 일인지도 모른다.
내가 맞다는 증거만 찾지 않기
앞으로 차트를 볼 때는 한 가지를 더 생각해보려고 한다.
“내가 틀렸다는 증거는 무엇이지?”도 반드시 찾아보기.
그리고 거래 중 이런 말들이 머릿속에 나타나기 시작하면 조금 경계해보려고 한다.
‘어차피 다시 올라가.’
‘조금만 기다리면 돼.’
‘이건 털어내는 거야.’
‘설마 여기서 더 가겠어.’
‘내가 판 다음 올라가면 어떡해.’
이런 생각들은 시장이 보여주는 정보가 아니라 내가 만들어낸 이야기일 수도 있다.
특히 나에게는 ‘어차피’라는 단어가 나오기 시작하는 순간이 하나의 위험 신호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금 돈을 벌고 싶은 걸까
그리고 거래를 하다가 시장이 너무 약이 오르고, 억울하고, 어떻게든 내가 맞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온다면 이 질문을 떠올리고 싶다.
아니면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거래하는가?
두 번째라면 그 순간의 나는 더 이상 시장을 거래하고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시장은 내 자존심을 회복하는 곳도, 내가 옳다는 것을 확인받는 곳도 아니기 때문이다.
틀린 나도 믿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직 나는 왜 이렇게까지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하는지 정확하게 모르겠다.
그 부분은 앞으로 조금 더 알아가야 할 것 같다.
다만 이번에 한 가지는 알게 됐다.
내 판단을 믿는다는 것은 내 판단을 끝까지 고집하는 것과는 다르다.
처음 상승이라고 판단했던 나도 믿을 수 있고, 새로운 정보를 보고
‘아, 내가 틀렸네. 여기서 나가자.’
라고 판단하는 새로운 나도 믿을 수 있어야 한다.
어쩌면 내가 배워야 하는 것은 ‘항상 옳은 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틀려도 괜찮은 나’를 만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시장은 앞으로도 수없이 내 생각과 다르게 움직일 것이다.
그때마다 시장과 싸우지 말자.
시장을 이기려고 하지 말고,
시장이 하는 말을 듣자.
그리고 수익이 내 앞에 왔을 때는 내 것을 챙기고, 내가 틀렸다는 증거가 왔을 때는 미련 없이 보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은 그것을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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