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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이해

고통과 괴로움의 차이: 고통이 괴로움이 되는 심리적 과정

by 황금정원 2026. 2. 22.

고통과 괴로움 관련 사진

 

힘들 때마다 저는 제 자신에게 반복해서 묻던 질문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 질문은 제 삶에서 괴로움이 극에 달했을 때 처음 떠올랐던 것 같습니다. “왜 인간은 이렇게 괴로움을 겪어야 할까?” “이렇게 사는 것이 과연 맞는 걸까?” “나의 행복은 어디에 있는 걸까?” 그때의 저는 행복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고, 다만 괴로움을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그 질문은 단지 나 하나를 향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를 포함해 가족들, 주변 사람들, 그리고 이 세상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향한 질문이었습니다. 별것 아닌 일에 쉽게 화를 내고, 서로를 의심하며, 마음이 단절되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이 질문의 답을 찾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제 마음을 처음으로 탐구하려 했던 출발점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이 질문에 정해진 답은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의 ‘과정’이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고통과 괴로움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우리가 던졌던 그 질문은 결국 하나로 모입니다. 고통은 피할 수 없는데, 왜 우리는 괴로워질까요?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말 속에는 이미 힌트가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고통스럽다”라고 말하기도 하고, “괴롭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비슷해 보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두 단어는 같은 자리에 있지 않습니다.

고통은 경험 그 자체에 가깝습니다

몸이 다쳤을 때 느껴지는 통증,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올라오는 슬픔, 관계에서 거절당했을 때 느껴지는 상처처럼 어떤 사건이나 자극에 대한 직접적인 반응입니다. 고통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며, 신경계가 위험을 감지하고 삶을 유지하기 위해 작동하는 생리적·정서적 신호이기도 합니다.

괴로움은 고통 위에 덧붙는 또 하나의 층위입니다

반면 괴로움은 고통 자체보다, 그 고통을 어떻게 해석하고 붙잡고 반복하느냐와 관련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실연은 고통입니다.
하지만 “나는 결국 버려지는 사람이야.”라는 생각이 반복될 때 그것은 괴로움이 됩니다.

시험에 떨어지는 것은 고통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가치 없는 사람이야.”라는 자기 규정이 시작될 때, 그때부터 괴로움은 길어집니다.

고통은 순간적인 경험일 수 있지만, 괴로움은 그 경험이 내 정체성과 미래에까지 확장될 때 만들어지는 심리적 상태입니다.

조금 다르게 말해보면, 고통은 ‘일어난 일’에 대한 반응이고, 괴로움은 ‘그 일에 대한 나의 해석과 저항’이 더해진 과정에 가깝습니다.

고통은 피할 수 없는 삶의 일부일 수 있지만, 괴로움은 그 고통과 맺는 관계 속에서 자라납니다.

고통은 어떻게 괴로움으로 확장될까요?

우리는 고통을 경험하면, 그것을 없애고 싶어 합니다. 이 감정은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다시는 이런 일을 겪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즉, 있는 그대로 경험하기보다 통제하고 제거하려는 태도가 먼저 작동합니다.

그래서 머릿속에서는 이유를 찾기 시작합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지?”, “앞으로 또 반복되면 어떡하지?”, “혹시 내가 잘못된 사람이라서 이런 걸까?”

이때 고통은 단순한 감각이나 감정의 수준을 넘어 생각과 결합됩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미래를 예측하고, 자신을 평가하며, 삶 전체를 해석하는 방향으로 확장됩니다. 고통이 사건이었다면, 괴로움은 하나의 상태로 자리 잡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고통이 괴로움으로 확장되는 심리적 과정이 시작됩니다. 고통 그 자체보다, 고통에 저항하고 통제하려는 움직임이 괴로움을 키웁니다.

화살의 비유

만약 내가 지금 화살에 맞았다면, 나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을까요?

가장 자연스러운 과정은 고통을 느끼고, 화살을 뽑아내고, 상처를 치료하는 것입니다. 아프다는 신호를 인정하고, 그 부위를 살피고, 필요한 도움을 받는 것. 이것이 고통이 지나가는 기본적인 흐름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혹시 내가 너무 놀라거나, 괜찮은 척하느라 그 고통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상처는 분명 존재하는데, 우리는 그 상처를 제대로 마주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런 생각들이 시작됩니다.
“누가 나에게 이런 일을 했지?”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난 거지?”
“내가 뭘 잘못했길래 이런 일을 당한 거지?”

화살이 꽂혀 있는 몸의 아픔보다, 머릿속의 질문이 더 커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우리는 상처를 돌보는 대신, 가해자를 상상하고, 상황을 반복 재생하고, 자기 자신을 비난합니다.

우리는 종종 상처를 치료하기보다, 상처의 원인을 증명하려 애씁니다.

그때 고통은 단순한 신체적·정서적 경험을 넘어섭니다. 상처를 치료하는 대신, 상처를 둘러싼 이야기와 싸우기 시작합니다.

어쩌면 괴로움은 두 번째 화살과 비슷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첫 번째 화살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삶의 사건이라면, 두 번째 화살은 그 사건을 둘러싼 해석과 저항, 그리고 자기 비난에서 날아옵니다.

※ 이 비유는 불교에서 전해지는 ‘두 번째 화살’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고통에서 괴로움으로 가는 과정은, 그 고통을 충분히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그대로 느끼지 못하고, 상처를 돌보지 않은 채 머릿속에서만 해결하려 할 때 시작됩니다.

고통은 몸과 마음이 보내는 신호입니다. “여기 아프다.” “여기 다쳤다.” “여기 상처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그 신호를 무시하거나 억누릅니다. 강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괜찮은 척해야 한다고 배우고, 빨리 잊어야 한다고 다짐합니다.

그렇게 고통을 건너뛰려 할수록, 고통은 다른 형태로 돌아옵니다. 분노로, 무기력으로, 냉소로, 혹은 이유 없는 불안으로.

고통은 경험되지 못하면 남습니다. 그리고 남겨진 고통은 점점 괴로움으로 자라납니다.

마무리

어쩌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고통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정확히 알아차리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오랜 시간 괴로움의 옷으로 두껍게 포장된 고통을 찾아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나의 고통을 천천히 들여다볼 때, 우리의 내면은 조금 더 단단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고통을 어떻게 알아차릴 수 있을까요?
다음 글에서는 수용전념치료 관점에서 이 과정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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